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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둔지네
전문가 과잉 양산시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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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날 저녁에 젊은이들 네 명이 집으로 찾아왔다.
모두 서른 후반의, 경향 각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젊은이들이었다.
술상이 차려졌고 대화 내용에 정치와 경제가 당연히 빠지지 않았다. 그들의 출신 학과는 서로 달랐다.
사학과, 불문과, 경영과, 국문과 출신들이었는데 교수와 회사의 중견 간부, 회계사로, 비교적 안정된 사회적 직위를 갖고 있는 소위 ‘요즘 잘나가는’ 편에 속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 모두 추석 민심 잡기에 골몰했을 것이지만 과연 귀성한 젊은이들의 대화에도 정치가 으뜸이었고 다음이 경제 문제였다.
한창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는데 갑자기 대화의 주제가 정책 성토로 이어지고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들은 명절을 쇠기 위해 어려운 시간을 내 고향에 내려와서 뜻이 맞는 동창들끼리 필자의 집까지 방문했었지만, 예민한 정치나 경제 문제에 이르러서는 의견의 합치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한 친구의 과격한 발언에 맞장구치기에는 뭔가 빠진 구석이 있어서 잠시의 침묵으로 동의할 수 없다는 의사 표시를 한 것이었으리라.
그리고는 재빨리 다른 이야기로 어색한 분위기를 헤쳐 나갔다.
다음으로 등장한 것이 자신의 전공에 관한 사회적 이슈를 색칠하는 것이었다.
사인사색(四人四色)의 전공이라 비교적 다양한 대화를 이을 수 있었다.
재미 있는 것은, 한 사람의 전공에 관한 주장에 다른 전공자가 댓말을 붙이면 당사자는 즉시 ‘네가 뭘 알아, 전공도 아닌 게’ 하는 표정으로 슬쩍 눈을 내리깔아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댓말의 길이가 바로 짧아져 버리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사학과 출신 앞에서 한국 역사를 떠들다가는 면박당하기 알맞은 것이고, 국문과 출신 앞에서 시나 소설 이야기 역시 그런 상황에 몰릴 가능성이 많다.
필자는 대학교수들이나 중·고교 교사들의 술자리에 자주 참석할 기회가 있거니와 모두 상대방의 전공 분야을 피해 가면서 대화를 이어가곤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대화를 부드럽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런 방법이 최선은 아니라도 차선책일 것을 모두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있었다.
필자는 바닷가 아주 작은 중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초등학교 졸업생 중 과반수가 중학교에 진학했으며, 그 졸업생 중 30%가 고교에 진학했으니, 그때 대학 진학률이 우리 마을에서는 2% 정도였다.
그런데 요즘 현실을 보자.
대학 신입생 모집 숫자가 고교 졸업생 숫자보다 많으니, 우리나라 모든 젊은이가 무조건 대학에 진학하는 행복한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매년 수십만의 전문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 다양한 전문가들이 들끓는 시대에 당연히 대화의 수준도 예전과 다른, 다양하고 깊은 내용이겠다.
정치·경제·문화·군사·예술·종교·도덕….
그러나 실상 그러한 대화를 꺼내기가 무섭게 되돌아오는 ‘이 한심하고 꼭지 덜 떨어진 인간’의 표정 앞에서는 그저 먹고사는 일에서부터 요즘 어렵다는 주식이나 부동산 이야기 혹은 새로 장만할 고급 승용차 이야기가 더 속 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문가 양산 시대에 좀 이상하지 않은가.
대화의 다양성이 복잡한 현대 생활에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자신의 전공에만 달라붙지 말고 좀 넓고 깊게 살필 수 있는 안목을 갖춰나가야 할 것이다.
미래의 모든 국민이 대학 졸업자가 될 것인데 대화가 그 수준을 따르지 못하면 공자의 과유불급(過猶不及)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다.
국민 모두가 전문가인 시대, 그러나 그런 시대가 온다면 분명 전문가 시대는 아니다.
박문구 강원작가회의 회장
모두 서른 후반의, 경향 각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젊은이들이었다.
술상이 차려졌고 대화 내용에 정치와 경제가 당연히 빠지지 않았다. 그들의 출신 학과는 서로 달랐다.
사학과, 불문과, 경영과, 국문과 출신들이었는데 교수와 회사의 중견 간부, 회계사로, 비교적 안정된 사회적 직위를 갖고 있는 소위 ‘요즘 잘나가는’ 편에 속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 모두 추석 민심 잡기에 골몰했을 것이지만 과연 귀성한 젊은이들의 대화에도 정치가 으뜸이었고 다음이 경제 문제였다.
한창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는데 갑자기 대화의 주제가 정책 성토로 이어지고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들은 명절을 쇠기 위해 어려운 시간을 내 고향에 내려와서 뜻이 맞는 동창들끼리 필자의 집까지 방문했었지만, 예민한 정치나 경제 문제에 이르러서는 의견의 합치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한 친구의 과격한 발언에 맞장구치기에는 뭔가 빠진 구석이 있어서 잠시의 침묵으로 동의할 수 없다는 의사 표시를 한 것이었으리라.
그리고는 재빨리 다른 이야기로 어색한 분위기를 헤쳐 나갔다.
다음으로 등장한 것이 자신의 전공에 관한 사회적 이슈를 색칠하는 것이었다.
사인사색(四人四色)의 전공이라 비교적 다양한 대화를 이을 수 있었다.
재미 있는 것은, 한 사람의 전공에 관한 주장에 다른 전공자가 댓말을 붙이면 당사자는 즉시 ‘네가 뭘 알아, 전공도 아닌 게’ 하는 표정으로 슬쩍 눈을 내리깔아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댓말의 길이가 바로 짧아져 버리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사학과 출신 앞에서 한국 역사를 떠들다가는 면박당하기 알맞은 것이고, 국문과 출신 앞에서 시나 소설 이야기 역시 그런 상황에 몰릴 가능성이 많다.
필자는 대학교수들이나 중·고교 교사들의 술자리에 자주 참석할 기회가 있거니와 모두 상대방의 전공 분야을 피해 가면서 대화를 이어가곤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대화를 부드럽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런 방법이 최선은 아니라도 차선책일 것을 모두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있었다.
필자는 바닷가 아주 작은 중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초등학교 졸업생 중 과반수가 중학교에 진학했으며, 그 졸업생 중 30%가 고교에 진학했으니, 그때 대학 진학률이 우리 마을에서는 2% 정도였다.
그런데 요즘 현실을 보자.
대학 신입생 모집 숫자가 고교 졸업생 숫자보다 많으니, 우리나라 모든 젊은이가 무조건 대학에 진학하는 행복한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매년 수십만의 전문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 다양한 전문가들이 들끓는 시대에 당연히 대화의 수준도 예전과 다른, 다양하고 깊은 내용이겠다.
정치·경제·문화·군사·예술·종교·도덕….
그러나 실상 그러한 대화를 꺼내기가 무섭게 되돌아오는 ‘이 한심하고 꼭지 덜 떨어진 인간’의 표정 앞에서는 그저 먹고사는 일에서부터 요즘 어렵다는 주식이나 부동산 이야기 혹은 새로 장만할 고급 승용차 이야기가 더 속 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문가 양산 시대에 좀 이상하지 않은가.
대화의 다양성이 복잡한 현대 생활에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자신의 전공에만 달라붙지 말고 좀 넓고 깊게 살필 수 있는 안목을 갖춰나가야 할 것이다.
미래의 모든 국민이 대학 졸업자가 될 것인데 대화가 그 수준을 따르지 못하면 공자의 과유불급(過猶不及)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다.
국민 모두가 전문가인 시대, 그러나 그런 시대가 온다면 분명 전문가 시대는 아니다.
박문구 강원작가회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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