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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친시

모노세로스 2023. 3. 9.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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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겹친 내 고향은
천리이언만
자나깨나 꿈속에도
돌아가고파
 
한송정 가에는
외로이 뜬달
경포대 앞의
한줄기 바람
 
갈매기는 모래위에
흩어졌다 모이고
고깃배들은 바다위에
오고가리니
 
언제나 강릉길 
다시 밝아가
색동옷 입고 앉아
바느질 할꼬
=================
신사임당 시
 
대관령을 구비구비 돌아 정상에 오르다 보면
정상 반쯤 왔다하여 반정이라는 곳이있다.
반정 조금 못미친 곳에 사임당이 쓴 사친시 글귀가 눈에 띤다.
 
강릉 골짜기에서 서울가는 길, 제일 먼저 거쳐야 할 곳이 대관령이다.
 
대관령은 강릉을 지켜주는 산이요~~
강릉시민의 노래 첫 구절이건만,
 
과거 대관령은 서울로 가기 위한 첫 관문이면서
막혀있어 오르기 힘든... 넘기 힘든 장애물이지 않았을까?
 
출세를 위해 과거시험 보러가는 이들도 참 넘기 힘든 고개..
서울까지 걸어서 얼마나 걸렸을까?
 
280km, 지금은 차로 2시간 30분, 기차로 서울역까지 2시간이면 가지만..
짚신 여러개 봇짐에 달고, 하루 40km 간다 치면 7일~10일 정도 계산 되지만 아마 보름도 더 걸렸을 것 같다.
 
그러니 공부보다 힘든게 대관령 넘어 서울가는 일이었으리라...
그런 곳을 사임당은 여자의 몸으로, 물론 동행하는 이가 있었겠지만, 어려운 길을 고개를 넘어 넘어 갔다.
 
사임당은 19세에 혼인을 하여 4남 3녀를 낳았다.
특히 10만 양병을 주창한 율곡 이이가 셋째 아들이면서 7남매 중에는 넷째였다. 
 
결혼후 아이 일곱을 낳아 기르면서 38세에 시집살이를 주관하러 서울로 갔으니
결혼후에도 20년 가까이를 친정에서 살았고, 
남편 이원수(덕수 이씨)의 본가는 파주였지만, 아이를 일곱이나 낳은 걸 보면 남편도 강릉에서 처가살이를 했을 것이다.
 
친정에서 아이를 기르며 살다가 시집살이를 위해 서울로 가는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대관령을 오르는 일이 너무나 싫었을 것이다.
더구나 부모님 건강도 좋지 않고...
 
고향을 떠나며 대관령 정상에서 바라본 친정집 북평촌!(현 오죽헌)
사무치는 마음을 담아 타향에서 쓴 사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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