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둔지네
잔인한 4월 본문

황무지(The Waste Land) - T. S. Eliot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대지를 망각의 눈(雪)으로 덮어주고
가냘픔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 먹여 살려 주었다.
슈타른 버거호 너머로 소나기와 함께 갑자기 여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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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엘리엇은 미국 태생의 영국 시인이다.
4월은 잔인한 달! 은 그의시 황무지에서 나온다.
언제부터 알게 됐는지 모르지만,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문장이 내 뇌리에 깊이 남아 있다.
4월은 왜 잔인할까?
겨울을 나고 새생명이 움을 틔우는 희망의 계절아니던가?
벚꽃을 비롯해 철쭉, 개나리, 진달래....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는
화려한 계절이 4월일진데...
그러기에 아름다움과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달이 4월이 아니던가
하지만...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생각과 느낌은 다를수 있다.
봄도 좋지만 겨울이 더 좋을수가 있고
낮이 좋지만 밤이 더 좋을 수가 있고
젊음이 좋지만 늙음이 더 좋을 수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기에 꽃의 계절 4월이 새로운 생명과 희망의 계절이지만
또한 가장 잔인한 달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 어머니 아버지 세대를 보더라도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었다.
가을거지로 수확한 곡식을 겨울을 보내면서 다 소진하고
보리가 나는 5~6월까지 간신히 버텨야 하는 시기..
흔히 보릿고개라고 하는 가장 어려운 시기가 4월이었을 게다..
진성의 보릿고개에서
아이야 뛰지마라 배 꺼질라
가슴 시린 보릿고갯 길
주린 배 잡고 물 한 바가지 배 채우시던
그 세월을 어찌 사셨소
초근목피에 그 시절 바람결에 지워져 갈 때
어머님 설움 잊고 살았던
한 많은 보릿고개여
풀피리 꺾어 불던 슬픈 곡조는
어머님의 한숨이었소.
가장 높은 고개, 보릿고개를 넘던 4월!
가장 잔인한 달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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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4.11) 아침!
예고됐던 강풍이 분다.
틀려도 되는 예보는 이럴땐 딱딱 잘도 맞춘다.
아침부터 다음날까지 초속 14m/c 전후의 강한 바람이 예고 됐었다. 때문에 오늘 계획했던 음악회도 다음주로 연기했다.
영동지역 봄바람은 유난히 세다.
매년 요맘때 농사를 위해 멀칭을 하지만 바람때문에 비닐이 벗겨지고 날라가 다시 씌우는 일이 연례 행사였다.
올핸 잘 넘어가겠지...
8시부터 회의가 시작되고 이번회의에 바람과 산불조심은 고정 메뉴였다.
8시29분!
단톡방에 농담같은 '운정동 불'이라는 톡이 뜬다.
설마...
이 바람에 불이면.. 정말 큰일이다.
북쪽 창가로 뛰어간다.
산너머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른다.
강풍에 나무들이 요동을 친다.
미쳤다. 이 바람에 어떻게 이럴수가 있나?
확인해 보니 사실이었다.
전 직원 비상!
산불지휘본부가 경포대주차장으로 꾸려졌으나
불이 너무 거세 녹색체험센터로 이동..
온통 자욱한 연기로 한치 앞을 볼수없다.
강풍에 진화용 헬기는 이륙할 엄두도 못낸다.
바람을 타고 번지는 불길보다, 바람을 타고 날라가는 불씨로 인해 번지는 속도가 더 빠르다.
바람이 너무 강하고 번지는 속도가 빨라 불길 잡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여기에 건너 뛰는 불길이 언제 사람을 덮칠지.모르고, 산불 진화 중에 매연에 휩싸이다 보면 숨도 못숴 오히려 더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 불이난 곳은 경포대 인근이라 국가지정 문화재, 지방문화재 등이 즐비한 곳이고, 유명 관광지다 보니 호텔 콘도 펜션 등 숙박시설 또한 산재해.있어 더 걱정이다.
순식간에 번진 불길 결국 바다 근처 송림을 태우고 다시 북진...
아침8시 20분경, 샌드파인골프장 인근에서 발화된 불길 오후 3시, 경포 바닷가 근처까지 다 태우고
더이상 갈데가 없어 북진을 하다.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와 기적같이 잦아든 바람에 불길이 잡히고 3시 30분경 90%정도 불길을 잡게 됐다.
참.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산림피해면적 179ha
문화재(방해정, 상영정) 2동 전소
주택, 펜션, 축사 등 266 동이 피해를 입었고
217가구 489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1명이 사망하고 26명이 다쳤다.
재난3단계 발령으로 전국에서 수십대의 소방차와 1,000여명 소방대원이 동원되었으나
매섭게 부는 바람, 그 자연앞에서 우리의 발버둥이 그저 가냘픈 몸짓에 지나지 않았음을
한스럽게 느낀 하루였다.
잔인한 4월 11일!
그날은 불을 끄는 날이었지만,
수습과 복구, 아픈 상처가 아물기 위해서는
4월... 그리고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지나보내야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