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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나의 이야기

아부지

모노세로스 2023. 4. 23.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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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방언 
경기, 경상, 전라, 충청권에서 쓴단다.
 
우리 아이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 아니 애칭이 아부지다.
아버지보단 더 친근감이 있다.
 
큰애가 말을 막 시작할때, 알려 주지도 않았는데, '아부지 아부지' 하고 울었다.
고것 참...
 
이런걸 뭘로 표현하면 좋을까?
그냥 우연찮게 나온 말?
 
고등학교 멀리뛰기 할때가 기억난다.
멀리뛰기야 뭐 속도가 중요하다. 근데, 너무 속도를 내서 그런지,
막판 도움닫기 때 자세가 틀어져 버렸다.
그래서 공중에서 자세를 바로 잡기 위해 팔다리를 허우적거렸던게
남들 눈에는 가위뛰기가 되버린거다.
또 공교롭게도 거리도 5m가 넘어 반에서 2등이다.
 
비록 키는 작았지만 가위뛰기하는 선수급 아이로 한동안 회자되었다.
다시 할 수 없는 가위뛰기! 그 뒤로 멀리뛰기를 피했다.
 
우리 아이들 어릴때 아부지라는 단어는 가위뛰기와 같은 느낌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지금의 아부지는 그냥 아부지, 친근한 아버지로 불리어지곤 한다.(나만의 착각은 아니겠지...)
 
울 회사에서도 날 아부지로 부르는 친구가 있다.
일명 공직아부지...
나이는 나와 큰 차이가 없지만, 늦은 나이에 입문해서 이제 막 8급을 달았다.
아무래도 처음 모셨던 분들이 기억에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다.
뭐든 처음은 다 낯설고 어렵다.
그 과정에서 혼을 냈던, 잘 대해줬든, 처음이다 보니 기억에 남을 수 밖에 없지않겠는가?
 
내게 기억이 남아 있는 첫 직장 상사는 동장님이다.
91년이었으니, 손글씨로 기안문을 썼던 시절이다.
 
컴퓨터는 물론 없었고, 동사무소 직원전체가 타자기 1대로 시행문을 만들었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완전 신출내기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였는데
그 당시만 해도 작게 쓰는 글씨가 대 유행이었다.
 
그래서 깨알같은 글씨로 기안문을 만들어 갔더니...
동장님, 결재포를 집어 던지셨다.
당시만 해도 집어던지고 욕하고 이런게 비일비재 했다.
 
참 황당하지 않은가?
아무것도 모르는 애한테, 설명도 없이 그냥 집어 던지셨으니...
노안으로 글씨가 잘 안보인다는 걸 50이 넘어서야 알았다.
깨알같은 글씨를 보니 짜증나셨겠지....ㅋ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는 과정에서 이것저것 잘 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날 아부지라 부르는 친구는 그런 내가 고마워서 그렇게 부르는 것 같다.(나만의 착각인가?)
 
그친구 나이가 40대 중반이니...참 나랑 얼마 차이도 안나는데..
졸지에 중년의 자식을 둔 중년이 되어 버렸다.
 
그 친구, 엊그제 책을 하나 보내왔다.
일자리종합안내서!
 
우리지역에 일자리 관련 기관이 여러곳이 있지만,
전체를 아우르는 안내서가 없었다. 좀 거창하게 집대성이라고 하지..
 
재작년부터 만들어 보고 싶었던 것을
실행에 옮겨 작년에 12개 기관 실무자들 모아서 산고 끝에 처녀작을 냈다.
 
그 친구가 잘 따라줬고, 힘들고 어려움도 많았지만 결국 만들어냈다.
올핸 22개 기관이 참여, 전보다 더 아우르고, 두께도 늘려서 두번째 책이 나왔다.
 
계장님,
월요일 배부 예정이나
공직아부지께는 먼저!
 
역시!
감사합니다. ^^
 
선생님 마음을 이제야 알겠다. 보람도 있고, 정말 기특하지 않는가?

올 1월, 다른부서로 전보간 전임 계장을 이렇게 챙기다니...

난 이러지 못했는데...

 

배움에는 위 아래가 없고, 끝이 없다.
이 친구에게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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